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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kitty is rock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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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벼랑이고 끝 같아요

    선생님, 죽고싶어요, 죽고 싶어요 너는 날마다 아름다워지는구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최소한 자퇴라도 해야겠어요 해야겠어요 넌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게 있으니 정말 아름답구나 급식 지도 선생님이 운동장 한 가운데를 지나간다 선생님, 그래도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처음부터 다시 다시 다시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없다구요 너무 오래 살았나 봐요 살았나 봐요 운동장에 급식 지도 선생님이 지나간 길이 선명하다 잘못했어요 뭐든 다 잘못했어요 이 베개만은 가져가지 마세요 그게 베개였구나 근데 얘, 헤어롤 떨어지겠다 다시 말아 봐 선생님, 그게 아니구요 사는 게 왜 이래요 날마다 벼랑이고 끝 같아요 끝 같은게 아니고 끝이어서 아름답구나 그 끝을 그렇게 발랄하게 넘어갈 수 있으니 그런 슬픔을 가져 본 적 없구나 |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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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았던 것은 그저 오후 두시의 햇빛과

    수업이 있는 날이면 혼자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진입로를 걸어 올라가는 걸 좋아했지. 교문까지 1.5km나 되는 길, 다시 스쿨버스를 잡아타지 않으면 안 되는 꽤 긴 거리. 하지만 난 그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았어. 수업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고, 멀리서 희미하게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어. 여름의 대기는 종종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어서 피부가 떨리도록 긴장 되었고 하늘도 있었고, 휘핑크림 같은 적란운도 있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낮의 신기한 적막도 있었어. 학교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그 따뜻한 바닥에 손을 대고 있으면 문득 참매미의 껍질이 만져지기도 했지. 곧 흙으로 돌아갈 매미의 껍질. 본체가 빠져나간 허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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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 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 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 두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 애는 화장실 옆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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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여기는 하늘 한가운데잖아요?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서 내리라는 요구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하늘 한가운데잖아요? 여기서 내리면 나는 죽잖아요? | 김사과, 천국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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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뭐라불러야할지모르겠다

    별이 떨어진다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네가 아침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었을 때 천장을 뚫고 쏟아지는 별들 나는 그 별을 함께 주워 담거나 그 별에 상처 난 너의 팔을 잡아 주고 싶었다 지나 보면 역시나 난 할 줄 아는게 없었는데 너에겐 특히나 그랬다 조용히 밥을 먹는 너보다 더 조용히 밥을 먹으며 너를 고요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의 고요한 아이야, 가끔은 시끄럽게 너와 선루프를 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정적이 찾아올 때 벌거벗은 나의 등을 안아 주던 게 생각난다 너는 작고 나는 포근했다 우린 오래오래 안녕이지만 오래오래 사랑한 기분이 든다 네 머리를 쓰다듬고 강에 뛰어들고 싶다 오래오래 허우적거리며 손의 감촉을 버리고 싶다 한 행성이 내게 멀어져 간 것은 재앙이다 네가 두고 간 것들을 나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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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래요

    옛날 사람들은 그런 개념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나 봐요. 인식 단위가 적은 게 아닐까요? 맨날 그러잖아요. 애들은 다 똑같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 여자는 똑같다, 남자는 똑같다, 엄마는 똑같다, 자식은 똑같다. 얼마나 인식범위가 작으면, 그 수없이 많은 파형이 다 똑같게 보일까요? 세상을 평균값 하나로밖에 보지 못하나 봐요.” 수애는 입술을 내밀며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른들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래요. 파장의 흐름이 이어진 것뿐인데. 백인과 황인과 흑인을 구분해서 말해요. 그들 사이에 있는 무수한 색소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요. 단어는 단지 평균값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인데, 단어에 세상을 끼워 맞추려 해요.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검은색과 흰색이 있는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 김보..